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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끄적끄적 2014. 12. 16. 13:08

(해준백기) 제목없음

해준백기1

 

원인터네셔날 철강팀엔, 그 이름에 걸맞게 쇠로 만들어진 듯 빈틈 없는 남자가 있다. 강해준 대리. 동기들 중 누구보다 빨리 실적을 쌓았고, 가장 먼저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대리들 중 가장 높은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그는 여타 부서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인재중의 인재였다. 학벌, 태도, 업무능력 거기에 강단있는 말투와 외모까지 기본옵션. 그는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를 합쳐놓은 듯 강하고 단단하면서도 자로 잰듯 바르기만 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 직속 상사, 사수다.

 


제목없음
(해준백기)
알오버스 약간 있음 주의

 


그래, 정말 그런것 같았다. 정말 빈틈이라곤 한틈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인줄 알았다. 저 사람도 인생의 희노애락을 알고 사랑이별슬픔 이런걸 겪어보긴 했을까? 하는 것이 이전까지의 솔직한 내 평가였다. 그가 두 아이를 둔 아이 아빠이자 상처한지 2년 지난 홀아비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사연있는 얼굴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학창생활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저렇게 빈틈이라고는 없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시종일관 유지한다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원으로 철강팀에 발령 받은지 1년차, 아직도 업무적 실수에 대해 지적하는 그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나는 조금은 두렵다. 일언반구의 핑계조차 허용할 수 없게 만드는 압박감이 있기 대문이다. 그러한 그의 철벽같은 갑옷을 두른 사내도, 아이의 앞에서는 한낱 아빠일 뿐이었다.


" 그래 지우야. 응응. 오늘 아빠 늦을거야. 아주머니 계실거니깐 지민이랑 같이 자고 있어. 그래 아빠 방에서 자고 있어도 돼. 침대 높으니까 안 떨어지게 조심하고."


그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라니. 그런 소리가 강해준 대리님의 목에서 나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1년을 바로 옆에 붙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강해준이라니, 나는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셔츠 아래 팔을 꼬집어 보았다.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이건 절대 꿈이 아니다. 어안이 벙벙한 체 서있는 내 팔을 슬그머니 잡아 당긴 한석율이 휴계실에서 전하는 말은,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강대리님 아기 아빠잖아. 몰랐어 백기씨?' 역시나 동기 중 최고의 정보통 답게 그는 여러 정보를 내게 알려줬다. 아이는 둘이고, 상처한지는 2년 지났다. 입사한 해에 바로 결혼해서 주변에서는 왜이렇게 서두르냐고 우려 반 장난 반 섞인 야유를 했지만 꿋꿋하게 청첩장을 돌렸다고 했다. 상대는 동갑내기 캠퍼스커플. 큰 아이 돌 때는 떡도 돌리고, 작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밥도 샀다고 했다. 그러나 작은 아이의 돌에는 떡을 돌리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돌도 보지 못하고 갔다고 했다. 심장병, 애초에 아이를 둘 이나 가졌던 것이 무리였었다고 했다. 그래도 부득불 낳겠다고 우기는 부인을 강대리님은, 그 천하의 강해준이 막지를 못해 먼저 아내를 보냈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을 때, 장모의 원망섞인 곡소리와 이리저리 잡아 뜯는 손길에도 아무말도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고 했다. 어쩜 사연 하나하나 다 그 같을까.


그의 사정을 내가 모르는 이유는 뻔했다. 철강팀에서 믿고 신뢰하는, 그만큼 아끼는 그의 상처를 굳이 꺼내지 않기 위해 쉬쉬해줬을 것이었다. 그게 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사수인 내가, 남들이 다 아는 사수의 개인사를 모르는 이유였다. 그것을 이해함에도 나는 내심 서운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와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와 그의 사이에는 딱 그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장백기씨, 미국 수출건 다시 한 번 확인 좀 해줘요. 소식이 없는게 아무래도 선박이 늦게 들어온게 아닌가 싶은데,"

"그거 조금 전에 확인했습니다. 대리님. 그쪽에서 메일 보냈어요. 기상 상황으로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합니다. 현지 납품 쪽에는 미리 연락해 두었습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시간 내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과장님한테 그대로 보고드리고, 이만 퇴근해도 좋습니다. 하던 거 정리하고 그만 가죠."

 

잔에 남은 커피를 마저 털어넣고 피곤한듯 고개를 돌리는 그에게서 우드득 하는 뼛소리가 났다. 요즘 그는 전에는 볼 수 없던 피로한 모습을 종종 보이고는 했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천성이다 천성. 예전부터 안 그렇게 생겨서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회사에서 안 그려고 자제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대리님. 괜찮으시면 맥주라도 한잔 하고 가실래요?"

"아뇨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집에서 애들이 기다려서 안될것 같습니다."


그의 입에서 '아이들'이란 말이 나올줄은 몰랐다. 불시에 공격을 당한 것 처럼 대꾸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자 그가 슬쩍 웃는다. 아마 내가 또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나 애 아빠예요. 장백기씨한테 말 안했나? 애들이 외가에 있다가 사정이 있어서 지금 우리집에 있거든. 당분간 일찍 들어가봐야 해서. 맥주는 다음에 마시죠.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봅시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월요일이 아닌 주말의 소란스러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는 동생에게 뭘 그렇게 잔소리 할 것이 많은지, 회사 생활은 괜찮은지, 애인은 아직도 없는지, 약은 잘 챙겨 먹는지, 쫓아다니는 변태 알파는 없는지 이런 별 시덥잖은 것까지 시시콜콜 종알거리고 있었다. 일일이 그러나 성의없이 대꾸해주다 까분다며 팔뚝을 맵게 맞고는, 얼얼한 팔을 문지르며 더이상 누나가 잔소리 하지 못하게 조카를 얼른 안아 들어 무릎에 앉혔다.


"경준아 너네 엄마 왜이렇게 잔소리가 많니?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봐 갈수록 잔소리만 는다 그치? 너 나중에 크면 진짜 힘들어서 어떡하냐."


아직 말은 커녕 옹알이도 제대로 못하는 조카는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꺄르르 웃는다. 누나는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목소리가 많이 누그러졌다. 이제 잔소리는 안 할 모양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두르며 옷깃을 잡으며 옹알이를 하는 아이에게 눈을 돌려 우르르 까꿍 하며 얼러주자 또다시 웃음이 터진다. 아이가 좋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오메가의 본능이다. 내 조카 뿐만이 아니라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예뻐한다. 한때는 이런게 싫어서 아이를 보고고도 얼굴 풀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팔자려니 한다. 예쁘고 천진난만한 애들이 좋은걸 어떡하란 말인가. 오메가 특유의 향 때문일까. 아이들도 나를 좋아한다. 이제 두돌인 조카 경준이는 제 엄마보다 나랑 붙어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신생아 시절 누나가 몇시간을 업고 있어도 잠투정을 부리던 아기를 내가 안고 있은 지 5분만에 재웠을 때는 누나도 혀를 끌끌 차며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강대리님네 아이들도 날 좋아할까. 생각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 화들짝 놀라 양뺨을 찰싹 쳤다. 저를 잘 안고 있던 삼촌이 갑자기 자해 비슷한 것을 하니 경준이가 깜짝 놀란다. 이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꺄르르 웃으며 내 뺨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물주물한다. 아이고 예쁜 거. 손을 아프지 않게 물어주니 또 웃음이 터진다.

 

"백기 너도 얼른 결혼해야지. 엄마 아는 사람들도 난리래 너 왜 빨리 결혼 안 시키냐고. 소개시켜주겠다는 사람도 줄섰다던데, 엄마가 뭐라고 안해?."


"누나는, 나 아직 서른은 커녕 이십대 후반 막 됐는데 결혼은 무슨. 동기들 다 일 하느라 바뻐. 우리 회사가 얼마나 일이 많은데 결혼이야."

 


누나는 뭔가 더 말을 꺼내려다 입을 다문다. 그러나 말을 안 한다고 모를까. 나는 오메가고, 알파 혹은 베타를 만날 거고, 흠이 없는 우성 오메가이므로 정상적이라면 알파를 만나 아이를 낳을 테니 결코 이르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겠지.

아버지는 베타다. 엄마는 오메가고. 베타지만 아버지는 능력있는 사람이었고, 그 증거로 엄마랑 결혼했다. 당연히 나는 베타 누나가 오메가로 나왔어야 했는데, 거꾸로 됐다. 그러나 나는 엄마처럼 베타랑 결혼하길 꿈꾼다. 알파한테 의존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능력이 있으면 되는거 아냐? 아직까지 내 의견은 그렇다. 눈알을 굴리며 나를 보는 누나를 피해 딴청을 하는데, 익숙한 옆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을 거치기 전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강대리님"

 

얼른 돌아보는 그 얼굴은 강해준 대리님이 맞았다. 그도 놀랐는지 '장백기씨'말하는 목소리 끝에 의문이 붙어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에 산다고 그랬었지.

 

"누나 집이 이 근처라서요. 누나랑 조카랑 같이 외식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아이들과..."

 

시선을 내리니 아이하나가 제 아빠의 바지를 꼭 붙잡고 있다. 그러고 보니 품에는 여자아이 하나가 안겨있다. 쟤들이 지우랑 지민이구나.

 

"백기야"

 

누나가 어깨를 툭 치자, 그제야 누나한테 강대리님에 대해 소개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누나의 얼굴엔 궁금함이 가득해 보였다.

 


"대리님 저희 누나랑 제 조카입니다. 누나, 같은 팀 내 사수이신 강해준 대리님이셔."

"안녕하세요. 장백기씨와 같은 철강팀에서 일하는 강해준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백기 누나예요. 아이들이랑 같이 외식나오셨나봐요?"

"네.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아서..."

"어머, 저희랑 합석하세요. 일찍와서 넓은 자리로 안내받았거든요. 애들이야 아기의자 달라고 하면 되죠."

 


아 망했다. 내 오지랖 유전이었지. 대리님 말을 끊고 쾌할하게 권하는 누나 때문에 슬쩍 대리님 눈치를 봤다. 다행이 기분 상한거 같지는 않은데... 괜히 내가 조마조마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다시 한번 권하며 이제는 서버를 부르고 있다.

 


"아 누나 좀... 대리님 곤란하시게..."

"네 감사합니다. 그럼 동석하겠습니다. 밖이 추워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었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누나가 우리자리로 온 서버한테 유아용 체어와 메뉴판을 부탁하는 동안 내 옆자리에 앉는 대리님을 빤히  쳐다보는데 오히려 무슨 일이냐는 듯 아무런 표정없이 나를 본다. 세상에 이 분 요즘 나한테 새로운 모습 참 많이 보여주시네. 아무렇지도 않게 서버한테 자신의 몫과 어린이 세트 하나를 주문하는 그를 어이 없다는 듯 잠시 더 쳐다봐줬다.

 

"아부부... 마마.."

 

경준이가 갑자기 보챈다. 아마 또래를 보기 힘든 외동이라 형 누나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유아용 의자에 앉고 있는 아이들이 신기한지 양 팔을 뻗는 모양새가 너무 귀여워서 한쪽 손을 꼭 잡아줬다. '형아랑 누나 보니깐 신기해 우리 경준이?' 유리알 같은 아이의 눈이 나를 쳐다보다 다시 아이들을 가리킨다. 큰 애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오빠는 몇살일까? 이름이 뭐야?"

 


경준이가 보채는 걸 보고 있다 내가 묻는 질문에 아이가 놀란다. 제 아빠가 아니라 자기에게 직접 물으니 놀란 모양이다. 답을 재촉하지 않고 살짝 웃어주며 보고 있자 제 아빠를 한 번 보고는 대리님이 고개를 끄덕여 주자 조그맣게 대답한다. '강지우... 다섯살이요....' '지우야 안녕? 동생은? 예쁜 공주님은 몇살이에요?' 여자아이라 숫기가 없는지 제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보챈다. 대리님이 얼른 품에 안아 주자 가슴팍으로 고개를 쏙 숨겼다. 지우가 대신 대답해준다. '동생은 지민이에요. 세 살.' '그래? 지민아 안녕? 오빠가 씩씩하네.'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자 아이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큰 아이는 영락없이 대리님과 닮았다. 살짝 처지고 동그란 눈매도, 아직 작지만 오똑한 콧대도, 어린 아이지만 제 아빠처럼 강단있는 분위기다. 알파. 비교적 형질 발현이 빠른 알파이니 분명 이 아이도 대리님처럼 알파겠구나. 그제서야 대리님이 생각나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봤다. 지금 상황이 재밌는지 회사에서는 못본 풀린 얼굴이다. 그러면서 계속 가슴에 안긴 딸아이의 등을 슬쩍슬쩍 쓰다듬어주고 있다. 언뜻 본 작은 아이는 대리님과 닮은 듯 이목구비가 조금 다르다. 아마 먼저간 부인을 닮았을 것이다.

 


"장백기씨는 아이를 좋아하나봅니다."

"네... 귀엽잖습니까."

 

시선이 느껴져 앞을 보니 누나가 재밌다는듯 방글거리며 웃고 있다. 저 입에서 '오메가니까 당연히 아이를 예뻐하죠.'라는 말이 안 튀어나와 다행이다. 나는 회사 어떤 사람한테도 내 형질을 커밍아웃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선 눈치빠른 한석율이나, 의무실의 간호사선생님 빼고는 내 형질을 아는 사람이 회사 내에는 없다. 나는 입단속 하란 의미로 살짝 눈썹을 찌푸려 주고는 경준이를 고쳐안았다. 제 바로 옆에 있는 지민이가 신기한지 계속 뭐라고 옹알이를 하고 있다. 지민이도 낯가림이 좀 풀렸는지 저한테 뻗힌 경준이의 손을 살짝 잡아본다. 일련의 소란이 끝난 후 식사가 다시 시작됐다. 누나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재잘재잘 내 어릴 적 얘기부터 매형 얘기 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댄다. 이 누나가 이렇게까지 말이 많았나. 다행이 대리님은 적당히 대꾸를 하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있다. 덜어준 그릇의 감자튀김을 얌전히 먹고 있던 지민이가 포크로 새 감자를 콕 찍어서는 나한테 내민다. 이젠 친구 해도 괜찮단 소리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어주며 앙 먹어줬다. 내 품에서 보고있던 경준이도 질세라 온 케챱을 뭍이며 먹고 있던 감자튀김을  쥐고 나한테 내민다. 아이고 이 아기악마 같으니라고. 세탁하기 쉬운 셔츠를 입고 와서 다행이다. 그래도 애가 서운할까봐 손으로 주는건 얼른 먹고 냅킨을 찾으려니 옆에서 대리님이 아까 직원이 갖다준 물티슈를 내민다.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와 필요 없다고 쓰지 않은 거였다. 고맙다고 말하고는 내 옷을 닦기 전에 얼른 경준이 손부터 깨끗하게 닦아준다. 애 엄마는 느긋하게 커피나 마시면서 이걸 보고만 있다. 내가 경준이만 아니면 누나를 안 만날텐데 으휴. 경준이 손과 입가를 다 닦아주고는 내 자리에 있던 냅킨으로 옷을 대충 닦았다. 그리고는 케챱이 있던 그릇을 멀리 옮겨놨다. 디저트로 나오는 아이스크림은 그냥 내가 먹여줘야지. 얼룩이 질까봐 누나한테 경준이를 안기고 화장실로 갔다. 일어서는데 지민이가 '쉬-'한다. 대리님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하고는 나를 따라나섰다. 흘낏 지우를 보는데 의젓하게 남은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괜찮다는 듯 제 아빠한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대단한걸? 역시 강해준 주니어는 다르구나.


셔츠를 바지에서 빼서 물로 행구고 있는데 화장실 칸에서 대리님과 지민이가 나온다. 아이의 손을 씻어주고는 자기 손도 닦은 대리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건다.

 


"오늘 고맙습니다. 장백기씨."

"예?"

"아이들한테 잘 대해준 것 말입니다. 지우도 지민이도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편하게 식사했습니다."

"아뇨. 뭐... 아이들이 워낙 얌전한데요."

 

대리님 품에 안긴 지민이를 본다. 살짝 웃어주니깐 마주웃어준다. 대리님이 갑자기 아이를 안지 않은 손으로 내 팔을 살짝 잡았다.


"조심해요 장백기씨."

"예?"

 

아 또 멍청하게 예? 하고 대답했어... 하는 자아성찰을 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말에 더 멍청하게 입이 벌어진다.

 

"아이들 앞에서 너무 방심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형질이 조금 개방 되어도 잘 티는 나지 않겠지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선 조심해야할것 같습니다만."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자 어깨를 몇번 두드리고는 '아마 거의 눈치 못챘을 겁니다 대부분. 저도 아까 테이블 앞에선 반신반의 했으니까요.'

 

정신없는 식사가 폭풍처럼 몰아쳐 지나가고, 덕분에 어색할 사이도 없었다. 가지고온 누나 차로 집까지 태워다 준다는데도 대리님은 폐를 끼친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누나가 '춥잖아요. 애들 감기걸려요.' 하는 소리에 그제서야 고집을 누그려트린다. 내가 아는 강해준 대리님은 '각'이라는게 항상 존제하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 각도 무력화 되는 모양이었다. 잠깐사이에 잠든 지민이를 안고, 지우의 손을 잡은 대리님이 고개를 숙여 누나에게 인사하고 '장백기씨, 월요일날 봅시다' 인사하고 아파트 쪽으로 발을 돌리는 것을 보고 차를 돌려 나왔다. 단지를 빠져 나오는데 누나가 갑자기 엉뚱하게 말을 건다.

 


"애 딸린 알파는 안돼."

"뭐래는거야 이 아줌마가."

"너 말이야 너. 아무리 잘생기고, 능력있어도 애 딸린 알파는 안돼. 니가 뭐가 모잘라서."

 


그 '애 딸린 알파'가 강대리님을 뜻하는 걸 알고는 뜨악한 표정으로 누나를 보며 말했다.

 


"누가 뭐래? 밥 잘먹고 왜 쉰소리야. 소화 안돼?"

"암튼... 근데 뭐야? 돌싱? 이혼남?"

"상처하셨어."

"흐음... 이혼남보단 나은데.... 아 그래도 애 딸린 남자는 안돼. 하나도 아니고 둘이잖어. 엄마아빠 알면 기절감이야 기절."

 


헛소리 하지 말라고 왁왁 거리는 나를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 눈으로 보는 누나를 가볍게 무시해주고. 아까 화장실에서의 대화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애 앞에선 나도 모르게 페로몬을 흘리는 걸까? 아마도 오메가이기 때문에 본능적인 행동일거다. 오메가의 본능 중 가장 강한건 무엇보다도 모성이니깐. 의도치 않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알파한테 커밍아웃을 한 셈이 돼버렸다. 그가 함부로 떠들고 다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아니 그건 그렇고 무려 오메가 페로몬을 맡고도 대리님은 어쩜 그렇게 멀정하신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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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버스, 해준백기(대리백기)

강해준은 침착하고 차분하지만 다정한 아빠일거 같다. 장백기는 다정하고 아이들을 예뻐하고 좋아하는 (새)엄마가 될 것 같다. 알파와 오메가로 끌려서 눈이 맞아 만나고, 부대끼고, 마침내는 이루어지겠지만,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과 따뜻한 사람의 만남이니까 오히려 둘 사이에 아이는 늦게 가지지 않을까? 지민이가 백기를 완전히 엄마로 인정하고 사랑을 뺏길까 불안하지 않아도 될 때쯤. 백기는 애들을 진짜 예뻐해서 잘때도 해준과에 사이에 두고 넷이 잘 것 같다. 속타는건 애기들 꼭 끌어안고 쌕쌕 잠든 백기 보고도 도나 닦아야 하는건 강대리님일듯ㅋㅋ 아침에 애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서 눈마주치고 몰래 뽀뽀 쪽쪽 하는 거라든가, 애들 할아버지 댁에 보내놓고 그동안 쌓인 회포 풀겠다고 하루종일 백기 안 놔주고 침대에서, 거실에서, 부엌에서 몸부터 부딫히는 대리님도 보고 싶음. 대리님... 지우아빠... 힘들어... 그만해요...응? 울며 애원하는 백기한테 입맞추고 오늘은 안 봐줘. 귀에 속삭이고 다시 가슴 지분거리고 백기 기절할 때까지 괴롭힐듯. 그러다 다음날 힛싸까지 터지고... 백기의 허리는 하늘나라로.... 애들 다 재우고 다른 방이나, 서재나 이런데서 대리님이 들이대면 백기는 소리도 크게 못내고 어깨나 치면서 애들 깨요... 나중에... 말려보지만 대리님이 섹시하게 너만 앙앙 거리지 않으면 아무도 안 깰걸? 하고는 입술로 입을 막아버리고... ㅎㅂㅇ로 한 손으론 백기 입 막고 한 손으론 가슴 지분거리면서 콱콱 박으면서 잔뜩 느껴서 거친 숨만 내뱉는 섹시한 대리님도 좀 보고싶네. 애들 깰까봐 손 떼라고도 못하고 뒤에서는 퍽퍽 쳐주고 대리님 숨소리도 섹시하고... 하... 존나 좋구나...아이를 낳으러 백기가 들어갈 때, 전부인 하늘로 먼저 보낸게 생각난 대리님은 트라우마로 거의 넋이 나가버릴듯. 그리고 산모도 아이도 건강합니다. 하는 소리 들으면 땀에 머리가 젖어 붙은 백기 이마에 입맞추고 눈물 비추면서 고맙다고 속삭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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