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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끄적끄적 2014. 12. 18. 13:52(석율백기) 물고기
어렸을 적 내 꿈은, 물고기가 되는 것이었다.
주말을 달구는 예능에 나오는 앙증맞은 여자 아이의 소망을 나도 꼭 그 아이의 나이일 때 즈음에 꿈꿨었다.
언젠가 부모님과 함께 보던 TV에 나오는, 사위에는 수평선만이 존재하는 파랗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 어느 바다에서, 나는 거칠것이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었다.
물고기
(석율백기)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움찔하며 잠에서 깼다. 또 그 꿈이다. 파란 바다를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쾌속정과 같이 빠르게 수면 아래를 미끌어져 움직인 나는 태평양 어느 한가운데의 다랑어였을까. 한석율과 밤을 보낸 첫 날부터 나는 그와 하는 날 항상 이 꿈을 꾸곤 했다.
"으응... 깼어? 몇시야?"
뒤척임에 잠에서 살짝 깼는지 그가 내가 기대고 있던 팔을 좀더 조여 어깨를 감싼다. 몸을 반 바퀴 돌려 끌어안아 맨 등을 쓰다듬는 손이 따듯하다.
"아직 밤중이에요. 좀 더 자둬."
"왜 자꾸 밤 중에 깰까... 아직 애기라 그런가?"
더 자두란 말에도 이미 잠에서 조금 깨어났는지 말을 더 건다. 능글맞게 물어오는 속에 묻어나는 걱정에 그냥 불면증기가 조금 있다고 둘러댔다. 항상 같은 꿈을 꿔서 깬다고 하면 걱정할게 뻔했다.
"따듯한 물 조금 마시고 자면 괜찮아. 석율씨도 얼른 자요. 내일 출근해야되잖아."
팔을 풀고 품에서 벗어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베개에 다시 얼굴을 묻는다. 잠들면서도 장난스럽게 얼른 물만 마시고 와서 일로 안기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잠자리를 갖는 날이면 항상 품에 안고 잠에 든다. 다정한 사람임과 동시에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다. 그게 좋아서 계속 만나고 있다. 전기주전자에 올린 물을 미지근하게 만들어 마신 후, 나는 다시 그의 품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팔을 껴안자 풀어내 팔베개를 해주고 남은 팔로 허리를 끌어 안는다. 나를 빈틈없이 감싸주는 이 안온함이 좋다. 그렇기에 자꾸만 잠을 방해하는 꿈조차 그의 품에서는 달콤한 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
"물고기?"
내린 커피를 내밀며 되묻는 목소리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고개를 작게 두어번 끄덕여주곤 커피를 호록- 마셨다. 딱 알맞은 맞과 온도다. 같은 기계가 내리는 커피이지만 그가 만드는 커피는 유독 더 맛있다.
"정확히는 물고기- 인것 '같아요'. 나는 내 모습을 못보고, 그냥 바닷 속을 빠르게 헤엄친다는 느낌이 드니깐."
"근데 왜 물고기야? 고래나 뭐 그런 것도 있잖아. 거북이도? 그러고 보니 거북이 잘 어울리네. 내 거북이 우리 장백기"
"헤엄치는게 이렇게 그랬거든요. 고래나 거북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제가 왜 거북입니까. 저 안 느립니다."
손으로 물고기가 움직이는 모양을 표현하는데 덥썩 잡는다. 뒤에 이어지는 질문과 항변은 무시한채 잡은 손을 꾹꾹 눌러주고 빙글 웃는다.
"왜 안느려. 장백기씨 진짜진짜 느린데. 내가 몇달을 관심있다, 좋아한다 그렇~게 티를 내고 신호를 보내도 모르고, 뽀뽀를 해도 모르고, 술김이란 핑계로 키스 해도 모르고, 나랑 자고 나서도 몰랐잖아. 세상에 그렇게 공들이고 예뻐해줘가며 섹스해줬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한석율씨 애인이랑 할 때는 꼭 크림이든 윤활제든 사놓고 하세요. 아픕니다.'라니. 나는 첫뽀뽀 때부터 날짜를 세고 있었는데 말이야. 뽀뽀가 우스워? 발랑 까져서는."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과장된 한숨을 푹푹 쉬는 모양이 능글맞다. 그건 느린게 아니라 둔해서 그래요! 항변하자 너 니가 둔한 건 아는구나! 하고 밝게 대꾸해준다. 말싸움으로는 한석율을 이겨낼 재간이 애초에 없을 것이다. 금방 체념하고 그래요 그래요, 나 둔합니다. 한다.
"장백기, 나는 여우같은 마누라보다 곰같은 마누라가 더 좋아. 그리고 나 니모도 좋아해."
휴게실을 나서서 나는 내 자리로, 한석율은 16층으로 돌아가는 중 빙글 돌아서는, 갑자기 저 말만 툭 해주고는 과장되게 손을 흔들면서 그럼 퇴근시간 맞으면 만납시다 백기씨! 하고는 살랑살랑 돌아간다. 말을 되새기고는 금방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마음 속은 포슬포슬 따듯한 기운이 퍼지는거 같아서 남은 오후 시간 내내 즐거운 마음이 남았다.
*
"흐응- 아-"
"여기 엄청 예민해. 왜이렇게 가슴으로 느껴? 우리 백기씨 알고 보면 마음만 소녀같은게 아니라 진짜 소녀인가?"
"흐응- 장난하지 말고. 하 거기..거기요..."
그와의 잠자리는 보통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가끔 나는 모를 이유로 수틀리면 짖궂은 정도가 심해지고 끈질기게 괴롭히지만, 보통은 한 두번의 사정과 간단한 샤워로 마무리 하고는 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닌 것 같다. 벌써 세 번째인데, 그는 이번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 없어보인다. '진짜 소녀인가 한 번 보자-' 하고 다리를 벌려 고개를 내밀길래 기겁을 하며 다리를 오무려 보지만 어림없다는 듯 잡은 팔에 힘을 준다. 방금전까지 자신의 것이 왔다갔다 한 곳을 살펴보는 그의 눈에서 즐거움이 보여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이내 다시 손가락으로 주변을 둥글게 만져서 애를 태우고는 콘돔을 뜯고 그것을 씌운 자신의 것을 맞춰 넣는 석율의 행동에 머릿 속이 새하얘진다. 유성우처럼 쏟아져내리는 감각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정말 물고기같네."
욕조 모서리에 기대 숨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 뜬금없이 중얼거린다. 안경이 없어 시야가 부옇다. 짐작으로 웃고있는 것을 알았지만 목소리는 새삼 진지했다.
"뭐가요."
되묻는 목소리는 쉬어있다. 그러고도 두 번을 더 했고, 욕실에서 또 했다. 신음을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잠자리 스타일에 더불어, 종내에는 울음까지 터졌으니 당연했다. 뒷처리까지 마친 후 따뜻한 물을 채운 욕조에 같이 몸을 담구고 퍼져있는 중이다. 얽혀있는 다리가 자연스럽다. 등을 매끈하게 쓸어주던 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준다. 머리 내린 얼굴을 좋아한다. 그는 나의, 나는 그의. 나도 그의 머리를 쓱쓱 쓸어내리며 다시 '왜 닮았다는 겁니까' 물어보니까 코를 살짝 쥐고는 '또 딱딱하게 말한다.' 핀잔을 준다. 교제를 시작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까지 깍듯하게 말하는 내 말버릇을 완전히는 못 고쳤는데 그는 그런 것을 서운해 했다.
"뭔데요, 뭔데"
"어, 방금 진짜 귀여웠어. 조르는 거 같아서. 또해봐. 응?"
"말 돌리지 말고요-"
셀쭉하니 말하자 토라져 보였던 걸까, 양 손으로 뺨을 꾹 쥐고는 '으이구 우리 백기 삐져써여?'한다. 장난치지 말라고 손을 쳐낼랬는데 얼굴을 잡은 손에 힘을 빼지 않고 단단히 잡고는 호히려 꾹 누른다. 못난이 얼굴을 만들어 놓고는 뭐가 좋은지 깔깔 웃고는 삐쭉하니 튀어나왔을 입술에 쪽- 하고 가볍게 입맞춰 준다. '왜냐하면 우리 백기는-'
"금붕어처럼 귀엽고"
쪽
"고래처럼 근사하고"
다시 쪽
"은어처럼 예쁘고"
다시 쪽쪽
"열대어처럼 예민하고"
쪽
"참치처럼 섹시하면서 맛있지."
이번엔 뺨에 힘을 풀고 쪽쪽 위아래 입술을 빨듯 물었다 떼고 그대로 깊게 입맞춘다.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 안으니 응답하듯 고개를 꺾어 다른 각도로 더욱 깊게 들어온다. 찰박 찰박 욕조의 물이 튄다. 꼭 바닷물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따뜻하고, 안온한 어머니의 뱃속 같을 바다...
아니, 정말로 나의 바다는-
나를 힘껏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만드는 너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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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쨌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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